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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인생의 열매

  • AD 대영교회
  • 조회 7546
  • 2014.01.09 16:46
본문: 갈라디아서 5:16-26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 큰 자랑거리입니다. 각각의 계절이 너무나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가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주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저는 가을에 낙엽이 예측 못할 곡선을 그으면서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 인생도 저 나뭇잎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겨보기도 합니다. 또한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추수 계절에 농촌에 가보면 희비가 엇갈립니다.
그런대로 농사가 잘된 집안은 축제와 흐뭇함과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습니다. 그러나 태풍의 피해를 입어서 농사를 완전히 실패해 버린 가정에서는 실망과 좌절과 어두움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한해 농사가 우리들에게 이리도 중요할진대 하물며 평생을 두고 맺는 우리 인생의 열매는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열매를 바라보는 농부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영적 열매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나는 평생을 통해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는가! 지금 내 알곡이 모여 있을 영혼의 창고, 마음의 창고에는 어떠한 것들이 쌓여있는가!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거기에서 우리의 모든 인생이 끝나버리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자유를 얻은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올바로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다고 계속해서 언급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올바로 지키지 않을 때 두 가지 위험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를 아들로 삼으사 우리가 이미 자유인이 되었지만, 이 자유를 올바로 간직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할 때에 우리는 다시 종의 멍에를 멜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잘못하면 다시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우리가 얻은 이 자유를 올바로 지키지 못할 때 우리는 방종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사랑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남을 섬기는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우리가 자유를 올바로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열매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는 다시 지으면 됩니다. 태풍으로 손해를 보았어도 내년에 다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다시 수확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생 농사는 결코 다시 지을 수 없습니다. 한번 지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여기에 중요성이 있습니다. 오늘이 기회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지, 어떤 열매를 맺어왔든지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인생 농사를 짓고 있지만 결국에는 둘 중 하나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인생의 열매를 두 가지로 분류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육체의 열매요, 두 번째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여기서 육신은 타락한 아담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성품을 이어 받는데,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타락한 성품을 이어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죄를 향해 달려 나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을 육신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이 육신을 따라 살면, 타락한 성품의 욕구에 따라 우리 인생을 살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육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우리 안에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더러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이 새롭게 창조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받는 것을 두 번 태어난다, 거듭난다, 다시 태어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떤 새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이어 받은 신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도를 따라서 이 하나님의 성품에 기인한 욕구를 만족시킬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육체의 열매를 맺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16, 18, 25절에서 이 말씀을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18절에서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라, 16절과 25절에서는 성령을 좇아 살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비슷한 말 같지만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이상하게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라’ 하는 말씀은 수동태로, ‘성령을 좇아 살라’ 하신 16절과 25절의 말씀은 능동태로 표시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인도는 누가 합니까? 성령님이 하는 것입니다. 따르기는 누가 따릅니까? 우리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한다는 말은 성령님께 다 맡기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는 성령님이 하시나 내가 능동적으로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의 소원에 나를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것은 과거 어느 한 시점에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 순간 우리가 성령의 지도에 따라야 함을 의미합니다. 제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의 ‘인도’라는 단어를 연구해 보았더니, 과거에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미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농부가 소를 인도할 때,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 호위병이 죄수를 인도할 때, 바람이 배를 인도할 때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모두는 성령의 인도도 받을 수 있지만, 사단의 인도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의 인도를 받을 것인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좇아 행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걷다’라는 말입니다. 걷기는 걷는데, 내 마음대로 걷는 것이 아니고 줄을 맞추어서 걷는 것입니다. 군사들이 제식훈현 때 똑바로 걷듯이 말입니다. 그 정해진 줄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하는 소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모든 소원을 우리에게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한 성령의 소원에 맞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인도는 누가 합니까? 성령님이 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맞추어 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할 때 우리 인생에는 풍성한 성령의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
우리 인생의 농사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연상을 해보았습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우리 모든 교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들고 모일 텐데, 어떤 사람은 지게가 모자라서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가득 메어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새끼손가락만한 것으로 달랑달랑 들고 옵니다. 성경은 그것을 부끄러운 구원이라 말씀하십니다.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주시는 성령의 소원에 따라서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오늘 혹시 유혹 가운데 계십니까? 성적 범죄 속에 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음란의 관계를 계속 가지지는 않습니까? 호색하지는 않습니까? 더러운 것에 머물지는 않습니까? 악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시기와 질투와 악독과 탐심의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모든 생각을 단호하게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혹시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습니까? 배우자에게 먼저 사과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성령님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권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녀와 가족을 조금 더 사랑해 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 마음에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그 사람을 끝까지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주셨듯이 사랑해보라고 성령님이 속삭이지 않습니까? 성령님이 어떠한 죄를 지적하시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돌이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 모든 성령의 말씀에, 성령의 소원에 우리 모두 맞추어 살아가십시다.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을 따라 살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 풍년이 든 들판을 바라보며 알곡을 모아들인 농부가 그 창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듯 우리 모두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정근 목사(디모데성경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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