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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
광주고등학교
수도침례신학교
북한선교 목회대학원
Luther Rice 신학대학원
개혁신학대학원
YuinUniversity 목회학 박사과정수료
한미전도대회 통역강사
 
저서
『마음의 밭을 갈라』, 『복음의 씨앗을 뿌려라』
『푸른 풀밭에서』, 『핵분열전도 제자와 열매』
좌우명
◈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노라"
 
 목양실 : 242-5507 / 010-4303-5507
E-mail : yhj4691@hanmail.net
 
 
사랑의 예수님께로(목사님 간증)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섭리 그리고 위대한 사랑은 지금도 제 마음을 뜨거운 감동과 벅찬 감격에 몰입하게 합니다. 저는 넓은 들판 한가운데를 굽이굽이 흘러 내려가는 조그만 강가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잘한다고 뭇사람의 칭찬과 총에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책읽기와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앞에 우뚝 솟은 무등산을 바라보며 강가의 뚝길을 달리면서 푸른 꿈과 낭만을 키워갔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나 정치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떨어진 후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교회를 약간 다닌 적이 있었기에 생소하지는 않았으나 믿음은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약 1년동안 교회를 출석하였으나 설교를 들어도 깨달아지는 것은 없었고 졸음만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과 회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출석을 중단한 저는 무신론을 주장하며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에 의하여 판단해 볼때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무지하고 나약한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져 속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은 종교가 없어도 분명한 자기 주관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올바르게 살기만 하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 서적을 만들려고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고 설교를 들으면서 모순된 점과 비판하고 싶은 내용들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교회를 출석하는 어떤 친구는 저를 사탄이라고 하며 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갈수록 공허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근본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 나이 스물한 살에 대학시험을 보고나서 일주일 만에 눈이 희미해지더니 거의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무려 5개월 동안을 여러 병원을 다니며 진찰과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들의 애쓴 보람도 없이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선언을 받고 실의와 좌절감에 빠져 탄식과 눈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과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인가에 대해 뼈아픈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전능자를 찾아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바로 그때에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습니다. 성경말씀과 찬송을 들려주고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는 그 분의 사랑에 저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퇴원한 후 고향에 돌아온 후로도 날마다 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를 들으며 서투른 기도나마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저회 어머니께서도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고 교회에서도 전도사님과 여러 성도들께서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라곤 한사람도 없는 집안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싹이 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의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고민하였고 반신반의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 10월 광주에서 열린 현신애 권사 신유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기회가 되리라고는 미쳐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많은 병든 자들이 기도를 통해 낫는 것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마다 제 마음 속에 죄책감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 11월 집회에 다시 참석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내용을 담은 영화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화해설 가운데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이사야 53:5-6)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빠져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어주셨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을 빗물처럼 쏟으며 지난날의 죄를 낱낱이 회개하였습니다. 저의 죄 때문에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후로 저의 마음속에 찾아오는 구원의 확신, 넘치는 평화와 기쁨과 감격을 억제할 수 없어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십자가만 생각하면 하염없는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며 감옥에 잡아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던 바울을 만나 주시고 구원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저같이 죄 많은 사람도 강권적인 역사로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마치 캄캄한 세상에 밝은 빛이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성경의 진리가 점점 밝히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집에 찾아오는 사람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으라고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갑자기 밥을 잘 먹고 기쁨이 충만하여 얼굴이 환해진 저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놀랐으며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거듭남의 체험을 한지 3개월 후에 주님의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데 전 생애를 바쳐야 된다는 소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신학을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매일 열심히 기도하며 성경테이프와 설교를 듣는 중에 믿음이 성장했고 여러 번 기도응답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저의 기도를 통하여 병든 사람이 낫기도 하며 귀신들려 정신이상자가 정상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저는 청년 혹은 학생들과 손을 잡고서 마을마다 집집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때로는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저를 좌절감에 빠지게 했지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전도를 계속하는 중에 주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현재의 저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서로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결혼하기로 결정하게 하셨습니다. 철저한 유교집안인 처가 식구들의 극심한 반대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신학을 하고자 수원으로 이사하여 1983년 드디어 수도침례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어떻게 공부를 할까하는 또 한가지 걱정이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의 안타까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별로 어렵지 않게 공부를 하게 되었고 성적표를 받아보니 전과목 A학점이었으며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어 성경테이프와 극동방송을 통해서 틈틈히 영어공부를 하여 한미 전도대회에서 설교통역을 몇 차례 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란 사도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원하며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와 노력을 계속하였습니다. 졸업할 때는 저희 아내에게까지 영광스러운 명예졸업장이 주어졌습니다. 실로 4년 동안의 과정이 어려움도 많았고 특히 가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말하자면 할말이 많지만 이 모든 시련과 역경이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87년 5월에 지금의 대영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개척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느라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살고 있던 방의 전세금에다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렸는데도 부족하여 간절히 기도하던 중 그동안 저를 위해 기도하여 후원해주셨던 어느 집사님께서 이백만원을 헌금해 주시므로 건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동역자들과 성도들의 뜨거운 성원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기를 원하여 대영교회라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재정의 10분의 1을 떼어 선교비로 지출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웁게 채워주셔서 모자람이 없게 하셨습니다.

체계적인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뜨거운 기도와 전도, 농어촌 미자립 교회의 지원과 해외선교, 젊은이들의 복음화와 지역사회를 위한 사랑의 실천등 비젼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성령과 역사 속에서 매 주일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은혜 받고 변화되며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저의 가슴은 더욱더 구령의 열정으로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저희 교회에 복을 주셔서2300평의 아름다운 동산에 800석의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내가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할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 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저같이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천하보다 더 귀중한 생명들을 구원하고 양육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광야를 지나게 하실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을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시며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목자대학을 통하여서 제자훈련의 비젼을 성취해 가고 있습니다.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각종 부흥회나 전도집회 또는 세미나를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게 하시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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